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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동 법 연 구 2002 하반기 제13호 서울대노동법연구회 |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노동법적 재검토
윤 애 림*
Ⅰ. 문제의 제기
1998년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파견법)의 제정은 ‘근로계약 없는 사용종속관계’를 부분적으로 합법화시켰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노동법제가 견지해왔던 원칙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했다. 1961년 직업안정법이 제정된 이래 “공급계약에 의하여 근로자를 타인에게 사용하게 하는 사업” 즉 ‘근로자공급사업’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왔다. 즉 우리 노동법제는 실질적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중간자가 개입하여 중간착취를 낳고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형식화시키는 다면적 근로관계(간접고용)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동시에 직업소개를 비롯한 직업안정활동은 국가의 책임으로 공공적 운영의 원칙이 견지되고 있었다. 1998년 파견법의 제정, 1999년 직업소개에 대한 규제완화를 포함하는 직업안정법 개정 등은 이러한 원칙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파견법의 제정은 노동현실에도 수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 파견법을 통해 불법적 근로자공급사업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으리라던 정부의 공언은 빈말로 그쳤다. 위장노무도급, 사내하청, 용역 등 다양한 형태의 불법적 근로자공급사업이 행정당국의 사실상의 감독방기 하에 확산되었으며, 파견법의 제정은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기업의 욕구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근로자들은 행정당국의 방기, 법원의 형식적 법해석, 다중착취 아래에서 노동3권도 박탈당한 채 저임금․무권리․노예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열악한 현실, 그나마 있는 파견법상의 규제조차도 적용하지 않는 행정․사법당국의 태도, 그리고 2000년 이후 끈질기게 전개된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은 “파견법 철폐”, “직접고용 쟁취”라는 노동운동진영의 요구를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노총, 전국민중연대를 비롯한 노동운동진영은 2002년 9월부터 ‘비정규직 철폐 100만 서명운동’을 진행하면서, 파견법 철폐․직업안정법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입법요구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노총은 노사정위 비정규특위에 제출한 문서 등에서 현행 파견법의 대안으로서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 활성화를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제기는 현재 노사정위 비정규특위에서 논의하고 있는 파견법 개정방향, 민주노총 등이 요구해온 파견법 철폐․직접고용원칙 강화 등과 맞물려, 직업안정법제의 재정비에 관련된 중요한 쟁점을 던지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직업안정법상의 근로자공급사업금지규정의 취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근로자공급사업에서 근로관계는 어떻게 해석되는가 등 이제까지 우리 노동법학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문제들과 연관된 것이다. 직업안정법제의 재정비 문제도 간접고용에 대한 노동법적 규제의 원리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가 핵심내용인 것인만큼, 대표적인 간접고용 유형으로서의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노동법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하에서는 근로자공급사업금지규정의 취지가 무엇인지, 근로자공급사업에서의 사용자책임에 대한 기존 판례․해석론의 문제는 무엇인지,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을 노동법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직업안정법제의 재정비 방향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차례로 검토하고자 한다.
Ⅱ.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법적 규제
1. 근로자공급사업의 개념
(1) 직업안정법상 근로자공급사업의 금지
우리 직업안정법에 따르면 ‘근로자공급사업’이란 “공급계약에 의하여 근로자를 타인에게 사용하게 하는 사업”을 말한다(직업안정법 제4조 제7호 본문). 직업안정법은 제33조 제1항에서 “누구든지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법 시행령 제33조 제2항에서는 국내근로자공급사업의 경우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한 노동조합, 국외근로자공급사업의 경우는 국내에서 제조업․건설업․용역업 기타 서비스업을 행하고 있는 자로서,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자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근로자공급사업과의 개념구분이 문제시되는 유형은 ‘도급’이다. 종래 직업안정법이 금지하는 근로자공급사업인지 여부가 문제가 되었던 사례들은 주로 노무도급의 형식을 띄고 있는 것들이었다. 실무에서는 도급계약, 업무위탁계약, 용역계약 등의 명칭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민법이론에 의하면 근로자공급과 도급의 구별은 분명하다. 민법상 도급이란 “계약의 일방당사자가 ‘일의 완성’을 약정하고 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의 지급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민법 제664조)을 말한다. 이러한 전형적 개념에 따르면, 도급에서는 근로자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수급권자에게 있는 반면, 근로자공급에서는 공급업자가 아닌 제3자에게 지휘감독권이 있다는 점에서 도급과 근로자공급은 쉽게 구별된다.
그런데 사실상 근로자공급이면서도 외형상 도급의 형식을 이용하는 위장업무처리도급 또는 위장노무도급이 성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역경비업법, 공중위생법 등이 허용하고 있는 시설관리업무의 근로자들이다. 또 1980년대부터 자동차․조선․중공업 등의 제조업에 도입된 이른바 ‘사내하청’ ‘외주용역’ 근로자들의 예도 있다. 이러한 고용유형들은 파견법 제정 이전에는 주로 직업안정법이 금지하는 근로자공급사업에 해당하는 것들이었고, 파견법 제정 이후에는 파견법이 금지하는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 대한 파견이거나 위법한 상시적 파견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고용유형들은 계약형식적으로는 파견․용역업체와 근로계약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사용사업체의 노동조직에 편입되어 사용사업주로부터 실제적인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노무를 제공한다. 대개의 경우 파견․용역업체와의 근로계약이란 것은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서 사용사업체로부터 계약해지나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고, 파견업체는 중간에서 노무관리를 분담하면서 중간이득을 챙기는 것이 보통이다.
법원은 직업안정법이 규제하는 근로자공급사업의 개념과 관련하여 “근로자공급사업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공급사업자와 근로자간에 고용 등 계약에 의하거나 사실상 근로자를 지배하는 관계가 있어야 하고 공급사업자와 공급을 받는 사용사업자간에 제3자의 노무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공급계약이 있어야 하며 근로자와 공급을 받는 자간에는 사실상 사용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로서 인력관리대행업체가 판매직․일반사무직․비서직 근로자들을 채용하여 용역공급계약내용에 따라 이들을 사용업체에 공급하고 이에 대한 용역비 중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으로 임금을 지불하여 왔으며, 사용업체들은 그 근로자들로 하여금 지정된 업무를 수행하게 할 때 용역업체와 협의하여 작성한 근무수칙을 지키게 했을 뿐 아니라 그 근로자들을 지휘․감독하여 왔다면 근로자공급사업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나 기업이 은행측과 운전기사 용역계약을 체결한 다음 그 계약에 따라 운전기사를 채용하여 은행에서 사용하게 하고 그에 대한 용역비 중 경비를 제외하고 임금을 지급하여 왔으며, 은행과 기업은 운전기사의 근무수칙을 제정하고 명기하여 은행은 운전기사에 대하여 은행업무관계상 직접 지시․확인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 근로자공급사업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등이 있다. 요컨대 판례는 해당 노무공급관계가 도급이 아니라 근로자공급이라고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서 노무수령자가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하는지 여부를 보고 있다.
한편 노동부는 근로자공급사업과 도급 등에 의한 사업의 구별 기준에 관하여 「국내근로자공급사업허가관리규정」(개정 2000. 12. 27. 노동부예규 제456호, 이하 ‘노동부예규’)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조【도급 등과의 구별】
① 근로자를 타인에게 제공하여 사용시키는 자는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급사업을 행하는 자로 본다.
1. 근로자를 공급한 자가 그 근로자의 업무수행, 근로시간, 배치결정과 그 변경 및 복무상 규율에 관한 사항에 대한 지시 기타 관리를 스스로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는 경우
2. 근로자를 공급한 자가 스스로 제공하는 기계, 설비, 기재(업무상 필요한 간이공구를 제외한다) 또는 재료나 자재를 사용하거나, 스스로의 기획 또는 전문적 기술과 경험에 따라 업무를 행하는 경우로서 단순히 육체적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경우
3. 근로자를 공급한 자가 소요자금을 자기 책임하에 조달․지변하며 민법, 상법 기타 법률에 규정한 사업주로서의 모든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
4. 근로자를 공급한 자가 그 근로자에 대하여 법률에 규정된 사용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
② 제1항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법 제33조 제1항의 규정에 위반하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고의로 위장된 것으로서 그 사업의 본 목적이 노동력의 공급일 때에는 공급사업을 행하는 자로 본다.
③ 제1항․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공급사업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2조의 규정에 의한 근로자파견사업은 공급사업을 행하는 자에서 제외한다.
또한 「근로자파견사업과도급등에의한사업의구별기준에관한고시」(1998. 7. 20. 노동부고시 제98-32호, 이하 ‘노동부고시’)에서는 근로자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정하고 있다.
제3조(도급 등과의 구별) 수급인 또는 수임인이 도급 등의 계약에 의해 수급 또는 수임받은 업무에 자기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그 업무처리에 있어서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파견사업을 행하는 것으로 본다.
1. 다음 각목의 사항에 관하여 근로자를 직접 지시하고 관리하는 등 노동력을 직접 이용하는 경우
가. 업무수행방법, 업무수행결과 평가 등 업무수행에 관한 사항
나. 휴게시간, 휴일, 시간외 근로 등 근로시간에 관한 사항. 단, 근로시간 관련 사항의 단순한 파악은 제외한다.
다. 인사이동과 징계 등 기업질서의 유지와 관련한 사항
2. 다음 각목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도급인 또는 위임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
가. 소요자금을 자기 책임 하에 조달․지급하는 경우
나. 민법, 상법 기타 법률에 규정된 사업주로서의 모든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
다. 자기책임과 부담으로 제공하는 기계, 설비, 기재(업무상 필요한 간단한 공구는 제외)와 자재를 사용하거나, 스스로의 기획 또는 전문적 기술 또는 경험에 따라 업무를 제공하는 경우
제4조(위장도급 등의 처리) 수급인 또는 수임인의 도급 등의 사업이 제3조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법의 규정에 위반하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고의로 위장된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사업을 행한 것으로 본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노동부는 ‘근로자공급’이나 ‘근로자파견’이 아닌 ‘도급’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수급인이 사업주로서의 독립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기준으로서 노무관리의 독립성과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한편 직업안정법상 ‘근로자공급사업’과 구분해야 할 유형으로 ‘유료직업소개’가 있다. 직업안정법은 직업소개를 “구인 또는 구직의 신청을 받아 구인자와 구직자간에 고용계약의 성립을 알선하는 것”(직업안정법 제4조 제2호)으로 정의하고 있다. 직업소개는 직업소개를 하는 자가 구인자와 구직자간의 근로계약의 성립을 알선할 뿐 근로자와 사이에 사실적 지배관계조차도 없다는 점에서 근로자공급과 구분된다. 판례로는 파출부로서 구직을 원하는 자로부터 회비 명목으로 소개알선료를 받고, 파출부를 고용하고자 하는 사람으로부터도 역시 회원등록비 명목으로 소개알선료를 받으며 일당 고용관계의 파출부를 알선․소개한 행위를 직업안정법 소정의 유료직업소개사업으로 본 사례가 있다. 직업안정법은 국내유료직업소개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등록하도록 하고 노동부장관이 결정․고시한 요금 외의 금품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기타 법이 정하는 제반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직업안정법 제19조 제1항․제6항).
(2) 파견법에 의한 제한적 허용
1998년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파견법에 의한 근로자파견사업은 근로자공급사업에 해당하지 않게 되었다. 파견법은 근로자공급사업 가운데서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파견법 제2조)을 ‘근로자파견’이라 하여 합법화하였다. 동시에 근로자파견사업은 직업안정법이 규제하는 근로자공급사업에서 제외되었다(직업안정법 제4조 제7호 단서).
파견법은 근로자공급 중 일부를 ‘근로자파견’으로 포착하면서, 이러한 근로자파견이 적법하게 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요건을 충족할 것을 요구한다.
첫째,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 기술, 경험을 필요로 하는 26개 허용대상업무에 대해서는 최장 2년간 근로자파견이 가능하다. 이 때 파견기간은 1년이며 파견근로자와의 합의가 있으면 1년을 연장할 수 있다(파견법 제5조 제1항, 제6조 제1항). 보통 ‘파견기간 2년’이라고 하는 것은 연장한 기간까지 포함한 것을 의미한다.
둘째, 일시적인 파견으로서, 파견금지 대상인 건설공사현장에서의 업무, 항만․철도 등의 하역업무, 선원업무 등을 제외한 업무에는 일시적인 파견이 가능하다. 파견법은 근로자의 출산, 질병, 부상 등을 이유로 파견근로자를 쓸 경우에는 그 사유의 해소에 필요한 기간 동안, 그리고 일시적․간헐적 필요에 의한 파견은 3개월(단 사유가 해소되지 아니하고 합의가 있는 경우는 3개월 연장 가능) 동안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파견법 제5조 제2항, 제6조 제2항).
셋째, 근로자파견이 제한되는 경우로서 쟁의행위 중인 사업장에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근로자를 파견해서는 안된다(파견법 제16조 제1항). 또 경영상해고를 한 후 2년이 경과하기 전에는 해당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해서는 안된다(파견법 제16조 제2항, 같은법 시행령 제4조).
이러한 파견법의 구조를 살펴보면 전문지식․기술이 필요한 업무나 일시적 인력확보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그 허용기간을 제한하여 근로자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자공급에서는 공급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고용 기타 유사한 계약에 의하거나 사실상 근로자를 지배하는 관계”만 있으면 되지만, 근로자파견에서는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할 것이 요구된다. 파견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와의 근로계약관계를 유지할 책임을 부담시킴으로써 근로자공급으로 인한 폐해를 보완하려는 것이다.
2. 근로자공급사업금지의 취지
‘근로자공급사업’은 해당근로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있거나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형식적 사용자와 실제 노동력을 사용하여 이윤을 얻는 실질적 사용자가 중층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면적 근로관계’ 혹은 ‘간접고용’의 전형적 유형이다.
이러한 간접고용의 확산은 “근로계약 없이 사용종속관계 없다”는 근대 노동법상의 원칙을 토대로부터 뒤흔드는 문제이다. 근로계약관계와 사용종속관계가 분리되고, 사용종속관계에 따르는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담시키기 곤란해진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임노동이 가지는 종속성을 ‘근로계약관계’로 포착해 내고, 이 근로계약에 대한 법적 개입을 통해 종속성의 완화를 추구해왔던 근대 노동법이론이 맞닥뜨린 중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1998년 파견법의 제정으로 상황은 한층 더 복잡해졌는데, 근로계약관계와 사용종속관계의 분리의 합법화, 즉 일정한 요건 하에서는 근로계약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고도 근로자를 자신의 사업에 투입하여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위기 이전까지 직업안정법은 근로자공급사업의 원칙적 금지, 직업소개 등 직업안정활동의 공공성 원칙을 법상 견지해왔다. 1998년의 파견법의 제정, 1999년 유료직업소개사업에 대한 규제완화 등의 과정은 이러한 직업안정법의 원칙을 동요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노동현실에서 직업안정법이 전혀 규범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적어도 직업안정법제의 규범적 내용은 근로자공급사업 등 다면적 근로관계에 대한 규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직업안정법상 근로자공급사업의 원칙적 금지, 파견법상 허가절차․파견허용대상업무․파견허용기간 등에 대한 제한, 근로기준법 제8조의 중간착취배제의 원칙 등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렇다면 법상 근로자공급사업 등 다면적 근로관계를 규제하는 취지는 무엇인가?
대법원은 근로자공급사업을 규제하는 취지는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여 영리를 취하거나 임금 기타 근로자의 이익을 중간에서 착취하는 종래의 폐단을 방지하고 근로자의 자유의사와 이익을 존중하여 직업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 헌법재판소는 “근로자 공급사업은 공급계약에 의하여 근로자를 타인에게 사용하게 하는 사업(법 제4조 제7호)으로서 사실상 또는 고용계약에 의하여 자기의 지배하에 있는 근로자를 타인의 지휘 아래 사용하게 하는 사업이므로 이를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맡겨둘 경우 중간착취, 강제근로 및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약취․유인 및 인신매매 등 범죄와 연계될 수도 있으므로, 법은 근로자공급사업을 전면 금지하고 다만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얻은 자에 대하여만 이를 인정하면서 국가의 엄격한 감독을 받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노동부는 “근로자공급사업은 성질상 인격체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므로 중간착취, 강제근로 및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있고 약취․유인 및 인신매매 등 범죄와 연계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일반적으로 금지한 다음 위험성이 적은 노동조합에만 허용하고 있는 것인 바, 이는 근로자의 자유의사를 존중하고 고용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공익”적 취지를 가진다고 본다.
근로자공급사업금지의 취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첫째, 근로자공급사업을 금지하는 이유를 전근대적인 강제근로와 중간착취의 온상으로서 특정인(labor boss)에 의한 전단적인 근로자 지배로 인한 봉건적 고용관습을 배척하기 위한 취지로 이해하는 견해이다. 즉 중간착취, 강제근로를 배제하고 ‘노동의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 봉건적 고용형태를 금지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파견법의 제정은 현실적으로 만연하는 근로자공급사업 중 공급사업주와 근로자가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현대적 간접고용형태를 양성화시킴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화에도 부응하고 해당 근로자의 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둘째, 근로자공급사업을 금지하는 취지를 공급사업주에 의한 중간착취․강제근로의 배제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근로계약 없이 사용사업주에게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통상의 근로관계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것을 시정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만연하고 있는 불법적 근로자공급사업을 규제하는데 현행 직업안정법이 무력하다는 현실인식으로부터 파견법을 통해 다면적 근로관계의 규제와 근로자보호를 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즉 파견법 제정을 통해 현재의 잘못된 간접고용 실태를 시정하는 쪽으로 입법전략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셋째, 노동법제가 근로자공급사업 및 중간착취를 금지하는 이유를 실질적 사용자가 형식적인 제3자를 개입시킴으로써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사태를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직업안정법의 입법취지가 애초에는 공급사업주의 근로자공급행위의 금지에 있었던 데 비하여, 노동현실의 변화에 따라 근로자를 공급받는 측의 사용자로서의 책임회피를 방지하는 것으로 입법취지의 초점이 전환한 것으로 이해한다. 한편 파견법은 엄격한 요건 아래 고용관계와 지휘명령관계가 분리되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한 법이기 때문에, 파견법이 정한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 근로자공급(혹은 불법파견)에서는 사용사업주가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온전하게 부담해야만 한다.
넷째, 헌법상 근로권 보장과 직업안정법상의 근로자공급사업금지, 근로기준법상의 중간착취배제원칙 등이 근로권의 규범적 내용으로서 ‘직접고용의 법리’를 내재한 것이고, 근로자공급사업금지는 간접고용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직업안정법 및 파견법에 의한 간접고용의 사용제한은 단순히 사용사업주에게 공법상의 의무를 부과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을 통해 공급된 근로자와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있으면 사용사업주에게 공급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법제의 구조를 볼 때 근로자공급사업금지는 단순히 봉건적 고용형태의 배제만이 아니라 현대적 형태의 다면적 근로관계를 규제의 대상으로 한다고 이해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로자공급과 도급의 구분기준에 관해 행정해석은, 수급인이 사업경영의 독립성 및 노무관리의 독립성 양자를 모두 갖추었을 때에만 도급으로 인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형상 이러한 독립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경우라도 직업안정법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로 위장된 것으로서 사업의 본래 목적이 노동력공급일 경우는 역시 근로자공급사업으로 본다. 이러한 시각은 직업안정법이 금지하는 근로자공급사업이 봉건적 노동보스의 지배 하에 있는 전근대적 고용형태만이 아니라 근로계약관계를 가지고 근로자를 노무도급 형식으로 공급하는 현대적 간접고용 형태도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법제 전체의 체계 속에서 살펴본다면, 근로자공급사업금지규정은 사용자책임회피금지원칙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력을 실제로 사용하여 이윤을 얻는 자가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해당 근로자의 처지가 통상의 고용관계에 비해 열악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밝히고 있듯이 “근로자의 자유의사와 이익을 존중하고 직업(또는 고용)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1차적으로 실제 노동력을 사용하는 자에게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파견법이 허가요건, 파견대상업무, 파견허용기간에 대한 제반의 규제를 두고,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 양자를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로 보고, 일정한 경우 사용사업주와의 직접고용관계성립 간주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점 등도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노동법의 규제의 시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용자책임회피금지원칙을 구체화하는데 있어 직업안정법이 너무나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직업안정법에는 위법한 근로자공급이 행해진 경우 공급사업주에 대한 처벌규정은 있지만 사용사업주에 대한 처벌규정은 없다. 또 위법한 근로자공급의 경우 사용사업주와의 직접적 근로관계를 간주하는 규정도 미비하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우리와 유사하게 다면적 근로관계를 규제하고 있는 나라들이 처벌의 주대상을 사용사업주로 맞추고, 위법한 다면적 근로관계에서의 사용자책임을 사용사업주에게 전환시키고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노무를 수령하는 사용자에게 노동법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근로자보호에 가장 충실하고 또 다면적 근로관계의 규제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입법미비와 감독방기는 종래의 직업안정법이 근로자공급사업을 규제하는데 거의 실효성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의 만연이 이른바 ‘근로자공급사업의 양성화론’으로 도치되어 제기돼 왔다. 1998년 파견법의 제정은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근로자보호에 있었다기보다는 경제위기 가운데 정리해고제 등과 함께 기업의 노동력사용의 탈규제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관철된 것이다. 이처럼 사용자책임회피금지원칙이 실효성있게 존재하지 못한 가운데 근로자공급사업을 통해 형성된 근로관계에 대한 판례들은 사용자책임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켰다.
Ⅲ.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
다면적 근로관계에서 사용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의 사용종속관계를 법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가 본격적으로 다투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근로자공급사업의 경우 주로 해당 근로관계가 직업안정법상의 근로자공급사업에 해당하는가 여부가 쟁점이 되어 왔고, 공급된 근로자와 사용사업주와 사이의 근로계약관계 성립에 관해 직접 쟁점이 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지금까지 사용사업주와의 근로관계 여부가 직접적으로 다투어진 사례는 주로 항운노조 조합원과 사용자와의 근로관계, 시설관리근로자와 건물주(또는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의 근로관계였다. 다면적 근로관계에서의 사용자책임의 문제에 관한 학설도 주로 이러한 판결들에 대한 비판 속에서 제기되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에서의 근로관계에 대해 판례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은, 현행법 하에서 근로자공급사업이 어떻게 규제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근로자공급사업과 개별적 근로관계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이하 항운노조)은 직업안정법에 근거한 근로자공급사업의 허가를 받아 소속 조합원을 창고업자, 하역업자 등에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항운노조 조합원과 사용업체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는지, 항운노조와 조합원간의 관계는 무엇인지 등이 재판상 다투어져 왔다. 대표적 판례는 다음과 같다.
(1) 판례
1) 서울가락항운노조 소속 근로자들과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지정도매법인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없다고 본 사례(대법원 1995. 1. 4. 선고 94누9290 판결, 산재보험료부과처분등취소)
이 사건에서는 “소외조합(서울가락항운노조)이 △ 조합원들에 대한 인사관리, 복리후생 등의 문제를 독자적, 자율적으로 운영 관리하며, △ 조합원들에 대한 근무시간, 작업배치, 작업방법 등에 관하여 그가 임명한 집행간부 및 작업반장, 작업조장 등을 통하여 직접 지휘 감독하며, △ 하역작업에 관한 안전 및 장비운용, 원고와의 업무협조사항, 일반교양 등의 교육을 스스로 실시하고, △ 소외조합은 원고뿐만 아니라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내 또 다른 지정도매법인인 동화청과주식회사 등을 허가지역으로 하여 직업안정및고용촉진에관한법률에 의하여 국내근로자공급사업허가를 받아 조합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조합장을 대표자로 하여 조합원들의 갑종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며 의료보험 역시 원고와는 별도로 가입되어 있고 근로기준법 소정의 근로자명부를 독자적으로 작성 비치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하여, △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업무진행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에 관한 원고(지정도매법인)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하며, △ 원고가 질서문란행위, 기물파괴행위, 폭행 욕설, 고의파업 태업, 출하주에 대한 부당행위 등의 경우 소외조합에 해당 조합원의 징계를 요구할 수 있고 소외조합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기로 하는 것 등인 사실, △ 원고는 위 하역작업비를 소외조합에 선급함에 있어 서울지역 각 농수산물시장에 분포되어 있는 소외조합과 같은 유형의 11개 하역근로자노동조합들이 매년 협의하여 결정한 하역노임협정표에 따라 물건의 품목과 출하량에 비례한 금액을 소외조합에 교부한 사실“ 등을 인정하였음에도, 지정도매법인이 하역근로자들에 인사권, 구체적인 업무지시 감독권이 없다고 보았다.
2) 농산물종합시장노조 소속 근로자들과 이들을 공급받아 하역작업을 시켜온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없다고 본 사례 (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누1504 결정, 산재보상보험료등부과처분취소)
이 사건에서는 “하역작업자들이 … 원고(농업협동조합중앙회) 소속 담당직원으로부터 당일의 작업지시를 받고 … 작업종료에 관하여는 원고의 작업종료의 지시 없이는 귀가할 수 없었던 사실 … 하역작업자들은 하역작업에 대한 대가로 매년 원고가 정하는 정부양곡 하역요율에 따른 상하차료 및 검근료를 지급받는데, 그 지급방식은 원고가 이를 일률적으로 관리하였다가 일정한 기간 동안 적립된 것을 이 사건 하역작업자들에게 직접 지급하는 형식을 취하고, … 소외 조합이 하역작업자들에 대한 보수지급이나 작업지시에 관하여 일체 관여하지 아니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 하역작업자들은 원고의 요청에 따라 소외 조합으로부터 파견된 자들로서, 원고와 사이에 개별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한 바 없고 △ 원고가 채용, 인사이동, 해고 및 퇴직 등에 관한 인사권을 갖고 있다거나 그들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이 있다고 볼만한 자료가 전혀 없고 △ 농산물의 구입, 판매 또는 정부양곡의 보관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원고가 사업장 관리운영계획에 따라 이 사건 하역작업자들에게 그 날의 작업대상과 작업내용을 개괄적으로 지적하고, 작업종료를 통보하는 것은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자로서 통상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지시라고 보여지는 점 등에 비추어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 감독을 하였다고 할 수 없고 △ 하역작업자들이 이 사건 사업장에서 장기간 계속 근로를 하였다는 것은 이 사건 사업장의 작업물량이 계속 있었다는 사정에 기인하는 것일 뿐, 만일 이 사건 사업장의 작업물량이 없을 경우에는 이 사건 하역작업자들로서는 소외 조합의 지시에 의하여 하역작업을 필요로 하는 다른 회사들의 사업장에서 근로하였을 것이므로 원고 회사에게 종속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으며, △ 원고가 상하차비 및 검근료를 직접 지급하다가 이 사건 처분 이후인 1994. 8.부터 직접 지급하지 않고, 소외 조합에 소속된 작업반장에게 지급하여 그로 하여금 하역작업자들에게 분배시키고 있는 점 △ 사업장 내에 소외 조합의 사무실이 설치되어 있고, 소외 조합은 작업반장을 통하여 다른 하역작업자들의 작업을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므로 …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와 이 사건 하역작업자들 사이에는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가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3) 전북서부항운노동조합 소속 근로자들과 이들을 공급하여 온 노동조합 사이에 근로계약이 존재하지만, 산재를 당한 조합원을 하역작업에 배치시키지 않은 것이 해고가 아니라고 본 사례 (대법원 1998. 1. 20. 선고 96다56313 판결, 해고무효확인등)
“항만하역 사업은 항만운송사업법 제4조에 정한 바에 의한 항만운송사업면허를 발급받은 자만이 영위할 수 있는 영업행위로 그 사업을 영위하는 자들을 통상 항만하역업자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각 항만 단위로 항만운송협회라는 사업자 단체를 구성하고 있으면서 노무자들의 노동조합 형태인 항운노동조합과 사이에 노사관계를 설정하고 있어 피고 연맹이 피고 조합 등 산하 단위노동조합을 대표하여 소외 사단법인 한국항만운송협회와의 단체교섭권을 가지는 사실, 이에 따라 원고 등 조합원은 그날그날 일을 한 양만큼 하역회사로부터 노임을 수령하여 일단 작업장에 나온 사람이 모두 똑같이 배분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피고 조합이 노무를 제공한 조합원들에 대한 임금을 일괄 지급받은 다음 그 중에서 조합비 등을 공제한 나머지를 1개월에 1번씩 각 조합원들에게 분배하여 온 사실, 항만운송사업면허를 발급받아 항만하역 사업을 영위하는 항만하역업자들의 사업자 단체인 항만운송협회는 피고 조합의 조합원들이 신체․정신상 작업을 감당하기에 곤란할 때에는 취로를 거부할 수 있는데 소외 사단법인 군산항만운송협회는 1994. 4. 7. 피고 조합 위원장에게 항만하역 작업중 재해로 인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장해급여 해당 장해등급을 받은 자는 노무 공급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공식 요청한 사실 … 한편 피고 조합(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산하 전북서부항운노동조합)의 조합원은 피고 조합에 가입하거나 등록함으로써 피고 조합과 사이에 조합의 지시․감독 아래 각 하역업체에게 노무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지급받기로 하는 내용의 근로계약관계를 맺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만 … 원고는 중노동인 항만하역 작업에 종사할 수 없는 신체적 상태에 있을 뿐만 아니라 노무 제공의 현실적 수령자인 항만하역자 측에서 원고의 노무 제공에 대하여 수령을 거절하고 있으므로 피고 조합이 원고를 취로시키지 아니한 것은 정당하고, 따라서 원고의 피고 조합에 대한 해고 및 제명처분 무효확인 청구와 노임 또는 노임 상당 손해배상 청구 역시 모두 이유가 없다”
이상의 판례들을 검토하면, 항운노조 조합원과 사용업체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이유는 ① 채용․인사이동․해고 등 인사관리를 항운노조가 독자적으로 하는 점, ② 작업배치․작업방법에 관한 직접적 지휘감독을 항운노조가 임명한 작업반장이 수행하는 점, ③ 항운노조가 하역작업비를 수령하여 조합원에게 매달 지급하는 점, ④ 항운노조가 근로자공급사업허가를 받아 조합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조합원들의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며 의료보험에 가입한 점, ⑤ 공급된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없는 점, ⑥ 작업물량이 없을 경우 조합지시에 따라 타회사의 사업장에서 근로하기도 하는 점 등이다.
반면 ① 사용자가 공급된 근로자에 대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항운노조는 이에 응해야 하는 점, ② 항운노조와 사용자단체가 협의하여 결정하는 하역노임협정표에 따라 하역작업비가 지급되는 점 등은 사용종속관계의 지표로 인정되지 않았고, ③ 조합원들이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여 사용자가 고용한 담당직원으로부터 당일의 작업지시를 받고 작업종료지시가 없으면 귀가할 수 없었던 점은 노무를 제공받는 자로서 통상적으로 할 수 있는 지시라고 보았다.
그리고 ① 조합원은 조합규약에 근거하여 조합의 지시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고, 조합의 작업지시에 불복하여 작업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경우 징계나 재적 등을 받게 되어 있는 점, ② 조합의 작업지시에 따라 노무를 제공하는 점, ③ 작업비를 조합이 일괄수령하여 조합비 등을 공제하고 매월 조합원에게 분배하는 점 등을 이유로 항운노조와 조합원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2) 개별적 근로관계와 사용자
지금까지 판례의 시각은 전형적인 이면적 근로관계에서의 사용종속관계의 지표에 집착하여 항운노조 조합원의 근로관계의 실질을 판단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첫째, 판례는 근로자에 대한 직접적․구체적인 작업배치, 작업지시를 사용자가 아닌 노조가 수행했다는 점에서 사용종속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노무인 하역작업의 특성상 사용자가 세부적 작업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당일의 작업지시와 작업종료에 대한 통제만으로도 노동을 감독할 수 있다. 근로자들이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여 작업수행을 위해 대기해야 하고 사용자의 작업종료지시가 없으면 귀가할 수 없었다는 사실관계는 이것을 입증한다. 둘째, 판례는 사용자가 채용․인사이동․해고 등에 관여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노동조합에 의해 수행되는 근로자공급사업의 특성상 제공되는 근로자(조합원)의 채용(조합가입)․배치를 노조가 관장하는 것은 조합의 노동력공급통제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사용자가 어떤 근로자의 징계․교체를 요구하면 조합이 원칙적으로 이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은 사용자의 해고권의 행사로 볼 수 있다. 셋째, 임금지급방식은 사용자와 조합 사이의 단체협약 등에 의해 변경될 수 있는 것이고, 작업단가를 사용자단체와 조합이 협의하여 결정하고 있다면 사용자가 임금결정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공급된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전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하역작업물량의 변동에 따른 고용불안의 다른 모습인 것이고, 통상의 일용근로자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2. 근로자공급사업과 집단적 노사관계
(1) 판례
1) 부산지역냉동창고사건(대법원 1993. 11. 23. 선고 92누13011 판결)
[사건의 개요] 원고는 부산지역에서 수산물을 냉동․냉장보관하는 22개 창고업자들이고, 피고는 중앙노동위원회이며, 피고보조참가인은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부산항운노동조합(이하 참가인조합)이다. 참가인조합은 근로자공급사업허가를 받아 원고들과 사이에 용역계약을 맺고 소속 조합원들을 원고들의 창고에 공급하여 수산물의 상․하차 및 선별작업을 수행해왔다. 참가인조합은 1989. 9.부터 1990. 1.까지 원고들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되었고 이에 1990. 3.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하였다. 지노위는 1990. 5.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였고 원고들은 이에 불복하여 1990. 6.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하였으나 위 구제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1990. 7. 참가인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중앙노동위원회는 초심신청취지가 모두 달성․해소되었으므로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실익이 없다고 하여 위 재심신청을 각하하였으나 원고가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은 원고들에게 재심신청을 할 이익이 있다는 이유로 재심판정취소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중앙노동위원회는 위 판결의 취지에 따라 위 재심신청사건의 본안에 관하여 심리한 후 1990. 11. 원고들은 참가인조합의 조합원에 대하여 사용자로서의 지위에 있으므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재심신청을 기각하였다. 원고들은 다시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원심판결은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이에 중앙노동위원회가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였다.
[판결이유] 이 사건에서는 ① 창고업자들과 항운노조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조합원들을 공급하여 온 사실, ② 조합원들에 대한 임용․해임․징계 등의 인사권은 전적으로 조합 집행부가 행사하고, 조합원들의 작업통제와 노임수령을 위하여 조합에서 작업반장 등을 임명하고 있는 사실, ③ 조합원들은 통상 창고업자들이 직접 고용하고 있는 직원들의 작업시간에 맞추어 출퇴근하고, 근무시간 중 작업물량이 없는 때에는 회사의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며, 작업반장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고, 창고업자들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야간이나 휴일에도 작업한다는 사실, ④ 조합원들은 작업물량이 많은 다른 작업장에 일시 파견되어 작업하기도 한다는 사실, ⑤ 조합원들은 원고들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소외 부산공동어시장 중매인협회와 참가인조합 사이에 체결한 노임협약이 정한 요율에 따라 작업량에 비례한 노임을 화주(貨主)로부터 그날그날 직접 수령하여 적립한 후 정해진 임금지급일에 작업량에 따라 지급받는 사실, ⑥ 원고들을 비롯한 창고업주들은 중매인협회와 참가인조합이 노임협약을 체결하는데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사실, ⑦ 원고들과 참가인조합 사이에 체결한 용역계약에 따르면 안전관리, 장비운용과 교육 등은 원고들과 관계없이 참가인조합측이 맡아서 하고, 위 작업수행 중 발생하는 제반 사고에 대해서는 창고주의 귀책사유로 발생한 것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에 대한 배상을 원고들에게 청구할 수 없으며, 조합원들에 대한 산재보험가입 등에 관한 사항도 원칙적으로 참가인조합에서 책임지기로 약정되어 있다는 사실, ⑧ 원고들에게 직접 고용되어 있는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복무규율 등은 조합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조합원들이 원고에게 채용되어 그 근무체계나 지휘감독 하에 편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그 임금이나 근로조건에 관하여도 사실상 아무런 결정권이나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등에 비추어 원고들과 조합원들 사이에는 사용종속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보고, 따라서 원고들은 노조법 제33조의 규정에 따라 단체협약을 체결할 의무가 있는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2) 남해화학사건(대법원 1995. 12. 22. 선고 95누3565 판결)
[사건의 개요] 남해화학주식회사는 1976년경부터 창고내작업과 부수작업에 대하여 대한통운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대한통운은 항운노조 산하 전남남부항운노조로부터 근로자를 공급받아 이를 수행해왔다. 그러던중 1977년 11월 경 항운노조가 대한통운에 대하여 작업환경 개선 및 안전대책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부수작업에 대한 근로자공급을 중단하였고, 남해화학은 1978년 1월경부터 협력업체인 대륙기업주식회사로부터 근로자를 공급받아 작업을 수행하다가 1994년 2월 1일부터 대륙기업 소속 근로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하였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시행으로 작업환경이 개선되자 항운노조는 1989년부터 부수작업에 대한 작업권 이양과 관련한 단체교섭을 수차례 요구하였으나 남해화학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항운노조가 항만운송협회와 맺은 단체협약 제4조 제1항에서는 “상용 및 일용근로자의 고용권을 항만운송협회의 회원사가 보유하나 다만 항운노조가 공급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고, 항운노조의 작업권에 속하는 업무에 있어서는 항운노조의 조합원 외에는 취업의 기회를 주지 아니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해화학은 1984년 항만운송협회에 가입하였다. 항운노조의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에 대하여 노동위원회는 이를 인정하였고,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였다.
[판결의 이유] 대법원은 남해화학이 가입되어 있는 항만운송협회와 항운노조 사이에 단체협약이 체결되어 있음에도 “단체협약의 규정만으로 구체적인 노무공급계약을 체결함이 없이 소외 협회의 회원사에 대하여 그 소속 조합원을 하역작업에 공급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거나 소외 연맹 산하 단위노동조합의 조합원과 소외 협회의 회원사와의 사이에 사용종속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원고(남해화학)는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판결문과 중노위 판정문을 비교해 보면 항운노조 조합원들과 창고업자들간의 사용종속관계에 관한 판단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임금결정, 작업지시여부 등에 관한 판단이 다른데 대법원은 주로 냉동창고하역 근로관계에서 임금지급방식, 작업지시방식 등의 특성을 크게 해석하여 사용종속관계를 부정하였다. 또 1) 판결문 중 ⑦⑧의 사항은 사용자의 요구와 자의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부분일 뿐 아니라 오히려 사용자 책임을 역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노동조합에 전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므로 사용종속관계의 판단에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2) 집단적 노사관계와 사용자
우리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은 제2조 제2호에서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제15조는 “이 법에서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또는 사업의 경영담당자 기타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노조법과 근기법이 법문상 유사하게 ‘사용자’를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두 개념이 동일한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대법원은 노조법상의 사용자라 함은 “근로자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자, 그 근로자와의 사이에 그를 지휘․감독하면서 그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를 말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개념과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개념을 등치시키고 그마저도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라는 협소한 틀에 제한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부당노동행위가 보호하려는 권리는 인사나 근로조건 등의 개별적 권리가 아니라 집단적 노사관계의 측면에서의 권리이다. 노동조합법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법률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인만큼 노조법상의 사용자개념은 근기법상의 그것과 입법목적을 달리한다. 노동3권 실현이 침해된 상태를 배제하는데 입법적 목적이 있는 만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은 근로계약상의 책임을 묻는 것과 동일시될 수 없다. 더구나 사용사업주의 지배력 하에서 실질적인 노무제공이 이루어지는 파견․용역 근로자들의 경우 사용사업주에 대한 단결권 등의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3권의 실제적 향유는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살펴본 항운노조 사례에서 대법원은 항운노조와 사용사업주 사이에 집단적 노사관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수행방식․임금지급방식 등의 형식만을 보고 사용사업주가 노조법상의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항운노조와 사용업체 혹은 사용사업주단체 간에 이미 단체협약이 체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적 근로계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사업주의 집단법상 사용자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집단적 자치를 조성해야 할 법원이 오히려 계약법리에만 연연하여 그것을 동요시키고 있다고도 비판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하여 제공되는 노동력이 기업활동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고 집단적 노동력의 제공이 근로자의 생존권 실현과 관련된다면 노사관계법의 규율대상이 된다고 본 중앙노동위원회의 태도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요컨대 노동조합법이 부당노동행위제도 등을 통해 보호하려는 권리가 인사나 근로조건 등의 개별적 권리가 아니라 집단적 노사관계의 측면에서의 권리라고 한다면, 근로권과 노동3권 전반에 대해 지배력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를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로 보는 것이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법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Ⅳ.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평가
1.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문제제기
(1)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 허용의 취지
앞에서 설명한 대로 근로자공급사업금지규정의 취지는 실질적 사용자가 그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여 해당 근로자의 조건이 열악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근로자공급사업이 원칙적으로 금지됨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취지는 무엇인가?
헌법재판소는 근로자공급사업을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맡겨둘 경우 중간착취, 강제근로 및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약취․유인 및 인신매매 등 범죄와 연계될 수도 있으므로, 법은 근로자공급사업을 전면 금지하고 다만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얻은 자에 대하여만 이를 인정하면서 국가의 엄격한 감독을 받게 하고 있는 것”이라 보았다. 또 노동부는 “중간착취, 강제근로 및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있고 약취․유인 및 인신매매 등 범죄와 연계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일반적으로 금지한 다음 위험성이 적은 노동조합에만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 하고 있다.
김형배 교수는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의 예외를 인정한 이유로서 첫째, 사실상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근로자공급사업을 전면금지하게 되면 종래의 노동력수급체계에 많은 지장을 주게 되고 이를 다른 합법적인 공공직업소개만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 둘째, 근로자공급에 대한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이 만연할 우려가 있는 점을 들고 있다. 결국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은 근로자공급사업에 따른 폐해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근로자공급사업이라는 목적달성을 촉진할 수 있다고 한다.
이승욱 교수는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취지는, 중간착취의 우려가 없는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근로자공급사업을 하도록 하여 근로자공급사업이 요구되는 불가피한 경제적 요청을 충족시키면서 국가의 직업소개기능의 보완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한다.
우리 직업안정법의 모델이 된 일본 직업안정법의 경우 제45조에서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 허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 직업안정법 제45조의 입법취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첫째, 노동조합의 목적․성격을 고려하였을 때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에서는 신분적 지배관계나 중간착취의 폐해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 둘째 노조의 근로자공급사업은 종래의 근로자공급사업자의 기능을 민주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이 되고, 근로자의 직업의 안정 및 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의 충족에 기여하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첫째,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에서는 영리적 목적의 근로자공급사업과는 달리 중간착취나 신분적 지배의 폐해가 적을 것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공급사업금지규정의 취지를 단순히 중간착취나 봉건적 고용의 배제만이 아니라 사용자책임회피방지에 있다고 볼 경우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미 살펴 본 항운노조 판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법원은 계속적으로 근로계약관계의 존재여부를 노동법상 사용자책임 인정의 핵심지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가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이라 하여도, 근로자공급사업을 통해 공급된 근로자의 지위가 직접고용된 근로자보다 열악한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둘째, 근로자공급사업이 요청되는 불가피한 경제적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다. 이미 설명한 대로 일본에서는 직업안정법이 제정될 당시 만연하고 있던 노동보스에 의한 인부공급업을 금지하면서, ‘노동의 민주화’라는 정책적 고려에서 혹은 미약한 공공직업소개기능을 보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예외적으로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을 허용하였다. 한편 근로자공급사업의 발생기반은 그 나라의 경제구조 혹은 사회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즉 도시의 반실업상태의 노동력의 사회․경제적 성격과 하도급제 혹은 근로자공급사업에 의존하는 상업자본적 구조가 그 발생기반이라고 한다.
이처럼 근로자공급사업은 전근대적 고용형태에 의존하는 자본의 요구와 공공직업안정기관의 미비라는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경제․사회적 발전에 따라 전근대적 고용형태가 축소되어 왔다고는 해도, 신자유주의의 전면화와 노동력이용의 탄력화에 대한 자본의 공격이 격심해지면서 이러한 고용형태는 현대적 자본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근로자공급사업의 존속이 요구되는 경제적 필요성이라는 것이 노동법적 시각에서 보자면 노동력사용에 따른 법적 책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자본의 요구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셋째,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의 공급 및 근로자의 직업안정에 있어 근로자공급사업이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이미 서술한 것처럼 공공직업안정기관의 취약함이 근로자공급사업 존치의 현실적 근거로서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근로자의 직업안정 및 근로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직업안정사업의 공공성의 원칙과 직접고용원칙이 중요하다는 점은, 20세기 이래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여러 국가의 입법정책을 통해 견지되어온 것이다. 비록 197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의 득세에 따라 이러한 원칙들이 후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직업안정사업의 공공성의 원칙과 사용자책임회피금지원칙은 여러 나라의 입법을 통해 견지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특히나 공적 직업안정기관의 역할이 미약하고 항만하역업․건설업 등에서 경기․물동량의 변동에 따르는 기업의 위험을 근로자에게 전가시키는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일반화되어 있다. 이러한 고용불안 및 열악한 노동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이라는 ‘차악(次惡)’이 아니라 공공직업안정기능의 강화와 상용화(직접고용)라는 최선의 방향을 모색할 수는 없는 것인가?
(2)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의 쟁점
한편 현재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근로자공급사업과 관련하여 노동법적 시각에서 제기할 수 있는 몇 가지 의문들이 있다.
첫째, 노동조합이 특정 조합원의 공급을 거부하거나 근로자의 산재, 작업량 축소 등을 이유로 사용사업주가 취로를 거부한 경우, 이러한 거부를 ‘해고제한의 법리’로 다툴 수 있을 것인가?
앞에서 살펴 본 전북서부항운노조 사건의 경우 산재를 당한 조합원이 해당 작업을 수행할 수 없음으로 인해, 사용사업주가 취로를 거부하고 노조가 해당 조합원을 공급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대법원은 해고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조합원의 산재 등을 이유로 공급 및 취로가 거부된 경우 판례는 해당 조합원과 노동조합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누어지면서도, 산재로 인해 해당 업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결론적으로는 공급 및 취로 거부가 부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반면 그러한 공급 및 취로 거부가 사용사업주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에도, 사용사업주에 의한 사실상의 해고조치라는 점은 전혀 고려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사용사업주와 공급된 근로자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존재한다면 사용사업주의 취로 거부는 사실상 해고에 해당한다고 보아 근로기준법 제30조․제31조에 따라 그 정당성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조합 탈퇴․제명 등을 이유로 한 노동조합의 공급 거부 및 사용사업주의 취로 거부에 대해서는 숍(shop)조항의 유효성 문제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노조법은 근로자가 “어느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 또는 탈퇴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거나 특정한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사용자의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다(노조법 제81조 제2호 본문). 다만 “노동조합이 당해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3분의 2 이상을 대표하고 있을 때에는 근로자가 그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단체협약의 체결은 예외로 하며, 이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가 당해 노동조합에서 제명된 것을 이유로 신분상 불이익한 행위를 할 수 없다”(노조법 제81조 제2호 단서)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과 관련하여 특정 노조에의 가입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유니언숍(union shop)조항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3분의 2 이상을 조직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체결한 단체협약에 의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고 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유니언숍 조항이 유효한 경우에도 사용자는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 특정 근로자를 해고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뿐이고, 이것이 곧바로 해당 해고의 정당성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유니온숍 조항에 근거한 해고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옹호하기 위해 행하여질 것이 요구되고, 해당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 제명된 조합원이 다른 조합에 가입하거나 새로운 조합을 결성한 경우는 유니온숍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노조법 제81조 제2호 단서에서 허용하고 있는 제한적 조직강제에 클로즈드숍(closed shop)까지 포함되는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통설은 이 조항이 유니온숍 조항을 의미한다고 보지만, 클로즈드숍 조항을 포함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종업원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지배적이었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클로즈드숍 조항의 적법성이 직접적으로 다투어진 사례는 없다. 다만 일본에서는 鶴菱運送사건에서 노동조합에서 탈퇴한 근로자에 대하여 사용사업주가 취로를 거부한 것이 부당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실제 항운노조가 체결하고 있는 단체협약상의 관련 조항을 살펴보면,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과 한국항만운송협회가 1995년 체결한 단체협약 제4조는 “① 상용 및 일용근로자의 고용권은 갑(항만운송협회)의 회원사가 보유한다. 다만 을(항운노조)이 공급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을의 작업권에 속하는 업무에 있어서는 을의 조합원 외에는 취업기회를 주지 아니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또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조합원의 취업을 거부할 수 없으나 다음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업을 거부할 수 있다(제12조). 즉 가) 조합원이 노동조합이 발행하는 등록증을 소지하고 있지 아니한 때, 나) 형사상 범죄로 인하여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다) 조합원이 노동조합의 규약에 의하여 제명 또는 자격이 정지되었을 때, 라) 신체 및 정신상 그 작업을 감당하기 곤란할 때, 마) 근무상 부정행위가 있음이 명백하고 노사가 이를 인정한 때 등이다.
철도, 육상하역분야에서 항운노조와 대한통운주식회사가 체결한 1995년 단체협약에서는 “노무자의 고용권은 회사가 보유하되 조합원의 작업에 속하는 업무에 있어서는 조합원 외에는 고용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제4조). 부산공동어시장과 부산항운노동조합이 체결한 1994년 단체협약에서는 “① 근로자의 시한고용권은 갑이 보유하되 을의 조합원 이외에는 고용하지 아니한다, ② 갑은 을의 조합에서 징계당한 자는 고용하지 아니한다”(제6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부산항운노조와 (주)한진 부산남부지점간에 체결된 2001년 단체협약에서는 “갑의 작업을 위하여 을이 노무공급을 하되 이를 성실히 이행키로 하며, 을의 조합원 외는 취업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농산물도매시장 중매인조합과 서울지역시장노조 동부시장지부가 체결한 2001년 단체협약에서는 “갑은 갑의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하차 및 제반작업에 대한 모든 권한을 을만 인정하며, 을은 갑의 지시에 따라 이를 성실히 수행한다”(제2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단체협약의 실태를 보았을 때 항운노조 등 근로자공급사업을 하는 노동조합의 작업권으로 인정되는 범위에서는 클로즈드숍 조항이 체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클로즈드숍조항이 허용되는 이유에 대해, 하역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고용불안에 대한 노무관리 및 노동복지의 책임을 노조에게 전가하는 대가로서 정책적으로 허용되었다고 설명된다. 이러한 정책적 이유가 근로자의 단결선택권을 제한하는 클로즈드숍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복수노조의 출현에 따라 클로즈드숍조항의 적법성이 실제로 문제가 되는 사례가 나타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클로즈드숍조항에 근거한 사용자의 취로거부, 즉 해고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옹호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하여 엄격하게 해석해야 할 것이다.
셋째,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에서 노동조합이 사용업체로부터 작업비를 수령한 후 조합비 등을 공제하고 개별 조합원에게 분배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임금전액지불 및 임금직접지불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의 문제이다.
근로기준법은 제42조 제1항에서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또는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해석에 관하여 사용자가 조합비를 일괄공제(check-off)한 후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단체협약에 그러한 조항이 있고 또 개별 근로자의 동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정당하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의 경우에는 이러한 조합비일괄공제가 아니라 사용업체가 공급된 근로자들의 근로의 대가를 노동조합에 지급하고, 노동조합이 이를 일괄수령하여 조합비 등을 공제한 후 개별 조합원에게 분배지급하는 방식이 통상적이다. 노동조합이 공급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조합비를 걷는 것 자체는 단결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행위로서 중간착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용업체로부터 공급된 근로자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일괄지급받아 조합비 등을 공제한 후 다시 배분하는 것은 임금의 직접지불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판례이긴 하지만 대법원도 노동조합이 그 조합원을 대위하여 사용자에 대하여 임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본 사례가 있다.
2.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1) 근로자파견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근로자공급사업의 모색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은 입법취지상 예외적․제한적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용자책임회피금지의 원칙에 있어서나 근로권의 실현에 있어 대단히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근로자파견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노총은 현행 파견법이 중간착취, 하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 등록형․모집형 파견 등 직업소개와의 무차별성, 허용외 직종의 불법파견 성행, 사용자 책임, 파견근로자의 노동3권 보장, 감시감독의 어려움 등 문제가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점들은 부분적 법개정과 보완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그러면서 전면적 재검토의 내용으로서 ① 유무료 직업소개, 하도급, 파견, 직접고용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사용자책임, 수수료 혹은 임금, 기관요건, 노동3권 보장, 벌칙 등을 통일적 법률로 재정비하도록 함, ②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노동단체나 비영리 사회단체 등이 비영리의 목적으로 근로자공급사업에 참여하거나, 기존의 파견근로자 등 직접 이해당사자가 자기 권익 추구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근로자공급사업에 참여할 경우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함을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노사정 및 관련 사회단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근로자공급사업에 관한 법률정비위원회(가칭)를 노사정위원회 산하에 설치운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이 방안은 한국노총의 대선요구안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 실현방안에 대한 내부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노동조합․시민단체․정부(지자체포함)․사용자단체 등의 협력사업형태로 근로자공급사업을 하는 방안, 한국노총이 독자적으로 근로자공급사업을 하는 방안, 비정규직노조 등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근로자공급사업을 하는 방안, 한국노총 회원조합의 공동출자로 파견회사 형태의 비영리기업조합을 설립하여 파견사업을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을 검토할 때 고민하는 지점은 무료의 근로자공급사업을 통한 중간착취 제거,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조직화 및 조직확대, 중앙단위협약을 통한 임금․근로조건 개선 등이라고 한다.
(2) 근로자공급사업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1998년 근로자파견제의 합법화는 IMF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운동을 사회적으로 압박하여 노동유연화에 대한 자본의 요구를 관철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파견법 제정 이후 4년이 지나는 동안 벌어졌던 사태들은 노동운동진영의 우려와 반대가 현실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4년간의 경험을 우리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파괴’와 ‘노동기본권의 무력화’, 그리고 ‘저임금․주기적 해고․노예노동의 확산’이라 요약할 수 있다.
2000년 6~7월에 걸쳐 전국적으로 수만 명의 파견근로자들이 해고되었다. 파견법 제6조 제3항에서 “2년 이상 계속 사용한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직접고용의무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용업체가 파견근로자를 교체 또는 해고한 것이다. 그러나 ‘파견근로자에 대한 학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2년의 기한이 돌아오는 파견근로자들은 주기적으로 해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불법파견은 규제되고 있는가? 파견법 시행 4년동안 정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감독을 방기하다시피 했다. 법원은 방송사비정규노조 사건에서는 “파견법 제6조 제3항을 회피하기 위한 사용사업주의 해고도 정당하다”고 판결하고, SK인사이트코리아노조 사건에서는 “불법파견에는 파견법상의 보호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정하여 사실상 사용자들의 불법을 부추기고 있다. 현행 파견법 하에서 파견근로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2000년 파견근로자들에 대한 대량해고사태 이후 파견․용역근로자들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간접고용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여 왔다. 이런 투쟁 속에서 “파견법 철폐”는 이제 노동운동 전체의 공동의 요구로 인식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00년 당시 파견법 철폐가 아닌 파견법 개정 요구를 제출했었던 한국노총과 시민단체마저도 이제는 파견법 폐지와 대체입법, 불법파견 근절을 요구로 내걸고 있다. 파견제 합법화 이후 노동의 현실과 파견근로자들의 고통을 직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파견법 철폐”가 절실하고 현실적인 요구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노총이 검토하고 있는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은 현행 파견법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앞의 Ⅳ의 1에서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을 둘러싼 노동법적 쟁점에 대해 서술하였다. 여기에서는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노동운동적 문제제기를 던지고자 한다.
첫째, 노동조합 등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이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처지를 흔히 ‘저임금, 무권리, 노예노동’으로 표현한다.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열악한 근로조건의 근본적 원인은, 실질적 사용자가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데에 있다. 사용사업주는 근로시간, 임금, 고용유지 등 제반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과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형식적인 근로계약체결의 당사자인 파견사업주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어, 사실상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권리는 보장받을 길이 없게 되어 버린다. 또한 사용사업주는 ‘파견(용역)계약해지’라는 합법적 방식을 통해 자유로이 간접고용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고,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에 있어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엄연히 남아 있다. 오히려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이라는 측면에서 간접고용에서의 근로관계 인정이 더욱 곤란해지는 어려움마저 있다.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으로 공급된 근로자와 사용사업주간의 고용관계의 인정에 대해 법원은 부정적이다.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의 경우에는 더더욱 부정적이다.
물론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은 영리적 근로자공급사업에 비해 중간착취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것도 가능성에 불과한데 왜냐하면 현재 파견비의 결정은 사용사업주가 가지는 압도적 경제력과 비용삭감압력으로 인해 최저임금수준을 약간 상회하는 선에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간착취의 여지는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저임금으로 간접고용 근로자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대항력을 가지기에는 한계적이다.
둘째, 노동조합 등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으로 간접고용 근로자들을 조직하고 조직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조합이 근로자공급사업 혹은 근로자파견사업을 수행할 경우 해당 노조의 조합원이 되는 방식으로 구직을 하는 것이니 만큼 조직률이 올라갈 것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사례를 경험한 바 있는데 IMF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급증한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노동조합이 무료취업알선센터를 운영하면서 조합원, 준조합원 등으로 조직해 본 경험이 있다. 대표적 예로 구 건설일용노조의 경우 공공근로사업과 맞물린 무료취업알선사업 등을 통해 1997년 당시 전국 7개 조직 2,000여 명에서 1999년 30개 조직 17,000(그러나 조합비 납부수준은 2,000명)명으로 조직이 확대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취업알선과 상담위주로 조합활동이 진행되면서 현장에서의 노동조건에 대한 개입력이 약하고 조합원의 결합력이 취약한 점이 한계로 지적된 바 있다. 또 구 서울지역인쇄노조의 경우 1998년부터 무료취업알선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곳을 거쳐가는 인쇄업종 근로자들을 통신원으로 조직하여 상호정보교류와 소식지 배포 등을 하고 있으나 노조로의 조직화는 잘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취업을 알선하는 것만으로는 조합원 숫자가 늘어나는 것 이상의 조직력 강화․확대를 기대할`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가장 큰 어려움은 공급처의 확보라고 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노조가 직접 ‘기업조합’이나 ‘주식회사’ 형태로 파견회사를 직접 설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현재 단순한 고민 이상으로 근로자공급사업권 확보를 활동과제로 잡고 있는 노동조합으로서 지역건설일용노조를 들 수 있다. 특히 포항지역건설노조의 경우 ‘단체협약의 지역적 구속력 관철’, ‘근로자공급사업권 쟁취’, ‘퇴직공제제도 조기시행’ 등 3대 사업을 결의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지역공단을 배경으로 한 동질적 작업조건의 존재, 기능공․직종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강력한 현장 조직력,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그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파업 조직력 등에 기반을 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근로자공급사업권을 확보함으로써 노동시장을 통제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조직력․투쟁력을 바탕으로 지역 노동시장을 통제함으로써 역으로 근로자공급사업권 확보를 고민하게 된 경우이다.
넷째, 노동조합 등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이 “간접고용 철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노동운동진영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가?
2000년 이래 비정규직 근로자의 조직화와 투쟁이 활발해지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파견법 철폐” 등을 핵심 요구로 내걸고 지난한 투쟁을 계속해 왔다. 양대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도 비정규직 철폐를 공통요구로 하여 다양한 연대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 등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 확대 주장은 결국 간접고용의 존재를 용인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투쟁요구와 배치된다. 비록 “파견법 대체”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지만, 근로자공급사업 자체가 고용관계와 사용종속관계의 분리를 바탕으로 하는 반노동적 고용형태로서 직업안정법이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도 결국은 근로자공급사업인 점에서 본질이 다르지 않다.
몇 년간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이제야 노동운동 진영 내에 “파견법 철폐”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제기되는 근로자공급사업 대안론은 또다시 투쟁전선을 교란시킬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Ⅴ. 맺으며: 간접고용에 대한 대응방향
근로계약관계 없는 사용종속관계인 다면적 근로관계는 본질적으로 헌법상 근로권과 노동3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 파견법은 불법적 간접고용을 규제하고 파견근로자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고용을 확산시키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근로권과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파견․용역근로자의 보호를 위해서는 불안정노동 전반에 대한 노동법적 규제와 함께 다면적 근로관계에 대한 법적 재규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저임금․무권리․노예노동을 양산하는 간접고용을 엄격히 규제하기 위해서는 현행 파견법을 철폐하고 파견법에 대해 일반법률이라 할 수 있는 직업안정법과 근로기준법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직업안정법은 다면적 근로관계의 발생을 규제하고 직접고용원칙을 실효성있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그 방향은 아래와 같다.
첫째, 도급계약 등의 형식을 위장한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을 실효성있게 규제할 수 있도록, 근로자공급사업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현재 근로자공급사업, 파견과 도급 등의 구별 기준에 대해서는 「국내근로자공급사업허가관리규정」(개정 1995. 2. 15. 노동부 예규 제259호)와 「근로자파견사업과도급등에의한사업의구별기준에관한고시」(1998. 7. 20. 노동부 고시 제98-32호)가 운영되고 있는데, 실제 이 기준에 입각한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관리감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현행 고시는 도급계약의 목적, 법률행위의 내용이 무엇인가라는 계약유형에 의한 구별이 아니라 파견업체의 경영규모․능력을 중심으로 구분하고 있다. 도급 형식에 의한 근로자공급이 경제적 실체를 갖춘 기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고, 세부적인 구별기준은 공급업자와 사용사업자에 의해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업성’을 구분의 중심에 두는 것은 도급과 근로자파견사업의 구분을 사업주의 자의에게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따라서 이 기준을 간접고용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사용사업주에게 종속되어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즉 ① 공급되는 노동이 사용사업주의 사업활동과 명확히 구분․특정되어 있는가의 여부, ② 공급되는 노동과 사용사업주의 활동에서 이용되는 다른 노동과의 관련성의 정도, ③ 공급되는 노동이 사용사업주의 사업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④ 사용사업주가 노무공급관계의 성립과 종료에 대해 가지는 지배력, ⑤ 사용사업주의 지휘감독의 존재여부, ⑥ 임금․근로조건 결정에 대한 지배력, ⑦ 공급사업주가 가지는 독자적 업무수행능력, ⑧ 노무공급계약의 이행이 사용사업주의 작업조직에 맞추어 수행되는지 여부, ⑨ 사용사업주와 공급사업주의 내부적 관계 등이 그 구체적 기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법규적 효력이 없는 예규나 고시의 형태가 아니라 직업안정법이나 같은법 시행령에 규정하고 그 내용을 강화하여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다면적 근로관계에서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규제로는 불법행위에 대한 형사처벌로는 충분하지 않고, 파견근로자와 사용사업주간에 직접 고용관계를 의제해야 한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위법한 근로자파견의 경우 사용사업주와의 직접적 근로관계 성립을 의제하는 조항을 두고 있는 이유도, 위법한 근로자공급을 통해 노동력을 사용한 자에게 근로계약상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간접고용 규제에 가장 효과적 방안이라는 취지에 기반하고 있다.
셋째, 위법한 근로자공급에 대한 규제의 초점을 공급사업주에서 사용사업주로 전환해야 한다.
현행 직업안정법에는 불법 근로자공급을 받은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파견법에는 파견대상이나 파견기간을 위반하여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사용사업주에 대해서 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바, 파견법 폐지에 따라 직업안정법상에 불법 근로자공급을 받은 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넷째,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의 허가요건을 구체화하고 강화해야 한다.
현재 국내근로자공급사업허가관리규정(노동부예규 제456호)에 따르면 허가요건 심사사항은 △공급사업 수행에 적합한 노조인지 여부, △ 조합원 이외의 자를 공급하는지 여부, △ 노동조합의 업무범위, △ 당해 지역별․직종별 인력수급상황 및 고용관계안정유지 여부 등이다(제4조). 그리고 직업안정기관은 근로자공급사업을 수행하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연1회 이상 현지 지도점검을 하도록 되어 있다(제7조).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공급사업도 근로자공급사업인만큼 직업안정법제의 정비에 따라 허가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급사업처를 확보하고 공급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을 것, 조합원의 통근범위 내에서 공급사업이 이루어질 것,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근로자를 공급하지 않을 것, 전국적 규모의 노조에 가입되어 있거나 노동조합의 운영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논문투고일 2002.11.17; 게재확정일 2002.12.__)
주제어 : 근로자공급, 직업안정법, 간접고용, 근로자파견





